[뉴스레터22호] 201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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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신간소식] 데이터 사회 비판 / 이광석

데이터 사회 비판 (이광석) 책 소개

 

‘기술 과잉의 시대’에 만들어진 무심한 공백과 사라진 맥락을 채워줄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 빅데이터 및 테크놀로지 문화 연구가 이광석 교수는 <데이터 사회 비판>을 통해 혁신이라는 의도에만 치중해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기술이 어떻게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되살피면서, 불안한 기술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인 독법을 제안한다.

 

기술 과잉의 현실을 방관해온 한국 사회 혹은 우리들의 무기력증을 비판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한다. 저항의 소멸은 대안이 부재하거나 도래하지 않을 것이란 오판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말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짙어지는, 기술을 불변의 상수로 두고 현실을 정의하려는 사피엔스의 고약한 관성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때에만 대중 자신의 손과 몸으로 도발하고 기술에 인간의 얼굴을 아로새기는 새로운 대안적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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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신간소식]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 / 이동연

보도자료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

               이동연 지음, 문화과학사

 

 

발신 : 문화과학사(02-335-0461) / 일자 : 2017년 12월 12일

내용 : 신간 보도의뢰 

출판사 : 문화과학사/ 512쪽 / 25,000원  

ISBN: 978-89-97305-13-1  93300

 

 

 

이 책은 『문화/과학』 편집인 및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연구자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저서이다.

이 책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은 저자가 2010년 『문화자본의 시대』와 『대안문화의 형성』을 발간한 후 7년 만에 한국의 문화연구와 문화현실에 대해 그동안 썼던 글들을 묶은 것이다. 앞의 두 책에 2005년에 낸 『문화부족의 사회』를 더해 2010년 당시 저자가 나름대로 명명했던 ‘한국 문화연구 3부작’이 문화연구자로서 이론과 실천의 한 여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이었다면, 지금 펴내는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은 문화연구를 위해 새로운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이정표 같은 의미를 갖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문화연구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앞선 3권의 책은 한국사회 문화현실분석, 문화산업의 구조, 대안적 문화운동을 주로 다루었다면,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은 문화연구 자체의 이론과 역사를 주된 주제로 삼고 있다. 문화연구란 무엇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론적 쟁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문화연구 관련 메타연구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그런데 이러한 메타적인 탐구의 주된 주제가 ‘문화연구의 종말’이라는 게 역설적으로 보일 것이다. 문화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의 주제가 ‘문화연구의 종말’인 이 역설적인 상황은 문화연구가 무엇인지를 다시 궁구하게 질문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총 3부 13장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 수록된 5개의 글들 중 ‘비판이론과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 1, 2, 3’이라는 부제를 공히 달고 있는 앞선 세 개의 글은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이 세 개의 글이 강력히 주장하는 바는 초기 문화연구의 이론적 실천으로의 귀환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문화연구의 종말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종말은 동시대 문화연구의 위기의식을 담고 있으며, 제도화된, 계량화된 지금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문화연구의 종말은 문화연구의 생성을 위한 선언이라는 역설을 발화한다. 문화연구의 종말은 생성의 계기이자 전환 혹은 귀환의 순간이다. 1부에서 초기 문화연구의 이론적 쟁점이었던 이데올로기 비판과 정체성의 정치학을 다루었던 것이나, 주체와 해석의 정치, 그리고 정동과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관계를 탐구했던 것도 종말과 생성의 역설을 강조하여 문화연구의 메타적 질문들을 가능케 하고자 한 것이다. 1부의 마지막 글인 「한국 문화연구의 역사기술학―토픽의 설정과 배치」 역시 역사적 문화연구와 동시대 문화연구의 인식론적 단절을 통한 현실인식과 비판이론으로의 전환을 사유하는 참고자료로 볼 수 있다.

2부의 글들은 문화연구의 확장된 이론에 기초해서 2011년 이후 주로 『문화/과학』의 특집 주제에 맞게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2부의 첫 번째 글에서 다룬 라캉과 들뢰즈의 이론은 문화연구의 중요한 이론적 토픽 중의 하나인 “욕망”을 다르게 사고하게 만들지만, 깊게 관찰해 보면 이 두 이론이 모두 ‘표상과 실재’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동물과 인간, 미학과 정치, 혁명과 문화, 비평과 메타비평 사이의 관계는 어떤 점에서 문화연구가 탐구하려 한 ‘표상과 실재’의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더불어 2부의 두 번째 글인 「동물과 인간 사이, 그 철학적 질문들과 문화적 실천」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다너 해러웨이, 조르조 아감벤, 자크 데리다의 다소 난해한 질문들을 소개하고 나름 해석하여, 그 의미를 문화적 실천으로 전환하려는 기획을 담고 있다. 동물에 대한 복합적, 구성적 글쓰기는 동물의 종분류학적 입장에서 벗어나 동물이 인간,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존재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글쓰기는 관계와 맥락의 글쓰기이며, 이는 종국에는 차별적 사회를 지양하고자 하는 실천을 강력하게 담고 있는 셈이다. 작년 한국사회 문학장에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온 신경숙 표절 논란을 화두로 한 「비평전쟁 시대의 메타비평 메니페스토」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 비평의 기능과 비평가의 위상에 대해 날선 질문을 던진다. 저자 이동연은 한국 문학장의 난맥과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메타비평의 개념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비평의 역사적 궤적의 변화를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의 특이성을 설명한 후 메타비평의 실천을 위한 메니페스토의 지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지막 3부의 글들은 한국 문화연구의 이론적 실천과 현실 문화운동과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문화/과학』 창간부터 지금까지 함께했던 25년은 비판적 문화연구자로서의 저자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체현하고 있다. 1992년 『문화/과학』에서 시작해서 1999년 <문화연대> 창립으로 이어진 문화운동의 이력들은 저자가 문화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 영역을 가로질러가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실제로 『문화/과학』의 이론적 궤적과 <문화연대>의 운동적 궤적은 많은 부분에서 함께 갔다. 『문화/과학』이 중요하게 제출한 문화공학 개념과 문화사회론, 생태문화코뮌, 사회미학 개념과, 운동에 있어 그것들과 순서대로 짝패를 이루었던 문화운동의 개입, 사회적 문화운동, 민중의 집 설립과 활동, 사회미학의 이중적 실천인 문화행동에 이르기까지가 그 구체적 실천 사례들이다(3부의 첫 번째 글「『문화/과학』의 이론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궤적들」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3부에 실린 문화적 어소시에이션, 신경숙 표절사건, 그리고 촛불혁명과 광장의 정치에 대한 글쓰기 역시 『문화/과학』에서 학습한 이론적 입장과 <문화연대>에서 배운 활동의 입장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실제로는 문화연구의 ‘종말’보다는 ‘생성’에 그 무게 중심이 가있다. 문화연구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문화연구의 생성을 제안하기 위한 조건부 주장에 가깝다. 문화연구가 50년 넘게 비판이론이자 현실비평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의 제도교육 안으로 편입되고, 국가 문화정책에 개입하고, 문화자본 확대재생산에 이론적 알리바이를 제공하면서 위기를 자초한 것도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화연구의 종말은 이러한 위기의 담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생성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 문화연구의 지속가능한 이론적 실천과 현실개입을 위해 기능할 수 있는 탁월한 저서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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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

1장. 문화연구의 종말과 생성-비판이론과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 1

2장. 문화연구의 이론적 전화와 ‘주체’의 문제-비판이론과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 2

3장. 정동과 이데올로기-비판이론과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 3

4장. 문화연구와 해석의 정치

5장. 한국 문화연구의 역사기술학―토픽의 설정과 배치

 

2부: 문화연구의 이론 지평 

6장. 주체의 분열과 생성: 라캉과 들뢰즈를 간파하기

7장. 동물과 인간 사이, 그 철학적 질문들과 문화적 실천

8장. 비평전쟁 시대의 메타비평 메니페스토

9장. 혁명의 문화, 문화의 혁명

 

3부: 개입하는 문화연구

10장. 『문화/과학』의 이론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궤적들

11장. 문화적 어소시에이션과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전망

12장. 문학장의 위기와 대안 문학생산 주체

13장. 촛불의 리듬, 광장의 문화역동―민주주의 정치를 위한 인식적 지도그리기

 

저자 약력: 이동연

계간 『문화/과학』편집인 및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플랫폼창동61’ 총괄예술감독이자 ‘예술세상마을프로젝트’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연구자 중의 한 사람으로 문화이론과 문화운동 현장 및 대안적인 문화기획과 공연제작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서는 『문화부족의 사회』, 『문화자본의 시대』, 『대안문화의 형성』, 『아시아 문화연구를 상상하기』, 『예술교육을 넘어서』, 『게임이펙트』 등이 있다.

 

내용과 관련하여 문의가 있으시면 저자이신 이동연 교수께 연락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락처: 010-8307-0464 sangyeun65@naver.com

 

문화과학사 전화: 02-335-0461/팩스: 031-902-0920   e-mail: moong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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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소식] 문화과학 북클럽 <저항의 양극 두섬: 한국과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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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소식] 문화과학 2017 송년파티

2017. 12. 30 (토) 오후 4시부터

스페이스 M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15길 17 도원빌딩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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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소식] 문화연구학회 가을학술대회 참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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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자료] 예술인 복지정책 종합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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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자료] 새 정부 예술정책 수립을 위한 예술지원체계 혁신 방향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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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자료] 콘텐츠 산업 중장기 정책비전: 미래 콘텐츠산업 준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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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22호][편집위원칼럼] 2017 ‘페미니즘 소설’ 박물지 / 오혜진

2017 ‘페미니즘 소설’ 박물지

 

오혜진(문화과학 편집위원)

 

바야흐로 “페미니즘 소설 전성시대”다. 30대 여성작가들이 주요 문학상들을 휩쓸고, 미디어는 ‘페미니즘 소설’의 약진을 떠들썩하게 보도한다. 그래서 어젯밤, 이 ‘약진’하는 ‘페미니즘 소설’들을 책상 위에 쫙 펼쳐보았다. 흥미롭게도, 책들의 표지에 모두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 여자들의 옆모습 혹은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누구지? 이 여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이 여자들은 마치 한 명 같다. 얼굴 없이 홀로 고요한 이 여자가 ‘지금 여기’, 2017년 남한 “페미니즘 소설”의 페르소나인지도 모른다.

최근 ‘페미니즘 소설’로 호명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여아 낙태나 취업기회 불균등, 경력단절과 같은 성차별 현상, 디지털 성범죄 및 성폭력, 그로부터 파생된 ‘가해/피해’의 구도를 다룬다. 이는 분명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젊은 독자들이 가장 집중했던 의제들이 ‘낙태법 폐지, 디지털성범죄 근절, 문화예술계 성폭력 및 여성혐오 사례 고발’ 등 여성 안전과 생명에 대한 위협, 기회의 불균등이었다는 점과 관련되겠다.

물론 나는 이 책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해진다. “페미니즘 소설”이란 건 그렇게 자명한 범주였나. 아예 표지에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써두기까지 한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의 발문을 쓴 이민경은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페미니스트끼리 모여 있을 때의 기분”, 즉 “안도감”이라고 적었다. 그 기분이 뭔지 물론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적어도 어젯밤, 그 구절을 읽는 마음은 조금 심란했다. 적어도 내게 ‘지금 이곳’의 페미니즘은 “안도감”을 주는 장소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장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 한국문학계를 휩쓸었던 <82년생 김지영>을 생각해보자. 이 작품은 한국 근대 장편서사의 마스터플롯인 ‘여성수난사’에 대한 거의 최초의 인류사회사적 각주 달기를 시도했다는 점만으로 현실 고발 및 폭로의 효과를 획득했다. 그러나 ‘김지영’은 여성 고등교육률이 남성의 그것을 상회하는 이 시대에 여전히 ‘빙의’ ‘실성’과 같은 주술적·낭만적 장치를 통해서만 말할 수 있었고, 그 청자로 설정된 것 역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로 상정된 남성이었다. 무엇보다, ‘김지영’은 바로 그 남성들에게 고통의 운명연대로서 ‘여성’이라는 범주를 호소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 어머니와 할머니, 여자 선배의 목소리까지 한 몸으로 체현하는 ‘동일화’의 문법을 고수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게 됐다. 현재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보듯, 지금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젠더 배제’를 말하고, ‘진짜 여성’에 대한 감별 행위가 횡행하는 때 아닌가. 메갈리아 이후, 남성의 전유물로만 생각됐던 호전성과 맹목성을 ‘여성성’이 아니라고 말할 이유는 없게 됐으며, 그 호전성은 어느덧 ‘타자(성)에 대한 혐오’까지도 방불케 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학은 어떤 “페미니즘 소설”을 갖게 될까.

‘생물학적 여성’만을 ‘안고’ 가겠다는 페미니즘 앞에서 이제 “페미니즘 소설”은 “안도감”을 주는 자명한 범주가 아니라, ‘무엇이 페미니즘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의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해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진짜 여성’이라는 가상의 범주, 그 억압의 굴레에 대해.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0744.html#csidx260395ca3f64063858bb591dd030a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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