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를 발간하며

 

'뉴미디어' 문화환경

 

『문화과학』이 발간된 지 어언 4년이 되었다. 8호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호부터는 편집체제도 바꾸고 표지도 손질하는 등 새 단장을 하였다. 변화를 모색할 때일수록 출발했던 시간을 뒤돌아 보는 법인지 새삼 창간사를 읽게 된다. 여간 결연하지 않았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분명히 '발랄'해진 모습이다. 그래선지 일부에서는 '변심'을 읽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나 그런 평가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 유연해질 참이다. 물론 유연성의 추구가 비판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창간호 이후 알튀세르에 기대어 하고자 한 작업들, '맑스주의 위기'를 문제로 삼았던 우리의 작업은 여전히 미해결이고, 따라서 진행중이다. 상황이 갈수록 까다로와짐을 절감한다. "요즘도 맑스인가" 하고 비아냥대는 것을 비롯하여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보는 시각의 편차가 다양함을 안다. 당사자로서는 알뛰세르든 누구든 어느 한 이론적 입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나, 이제 알튀세르는 필요없다는 생각은 둘 다 문제라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푸코와 들뢰즈 등의 작업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 변화도 그래서 비판이론의 어느 한 편에 손을 들어주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몇몇 온당한 지적대로 이들의 작업과 알튀세르의 작업, 그리고 다른 종류의 작업들이 어떻게 절합될 수 있는지 따지면서 '맑스주의 전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애초에 시작했던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번 특집의 주제는 '뉴미디어 문화환경'이다. '전자복제', '정보화', 혹은 '뉴미디어'가 주된 정세로 떠오른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텍스트, 이미지, 소리, 동작 등 여러 문형들은 새로운 조작과 상호결합 국면을 맞고 있다. 넓은 의미의 '글쓰기'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도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비롯된 바 큰데, 이로써 문학, 미술 등 기존의 예술 장르들에도 변동이 예상된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문화지형의 변동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 특집에 실린 글들은 각기 이 질문에 대한 탐색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권두논문격으로 실은 심광현의 「전자복제시대와 이미지의 문화정치」는 전자복제로 인한 이미지 생산방식의 변동을 다시 읽은 벤야민의 입장에 기대어 고찰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생산 조건인 첨단과학기술이 계급갈등과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과거에 형성된 예술과 문화의 위상에 발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이다. 김주환의 「정보화사회와 뉴미디어」는 특히 인터네트 사용의 확산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뉴미디어 소개는 이 분야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차분한 개설로 읽힐 만하다. 장승권의 글 역시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점검으로 컴퓨터 공학의 출현에 따른 프로그래밍의 문제를 정보기술과 글쓰기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편 강내희는 「디지털 시대의 문학하기」를 통해 '하이퍼텍스트'라는 새로운 형태 텍스트의 출현이 문학의 형질과 문학활동에 어떤 변동을 초래할 것인지 탐색한다. 이 특집에서 살펴볼 것은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그리고 새로운 기술환경의 변화로 문화지형에 어떤 변동이 생길 것인지 하는 문제겠다.

 

작년 5월 31일에 발표된 교육개혁위원회의 「교육개혁안」으로 교육계가 엄청난 회오리에 말려 들었다. 그동안 꾸준히 새로운 학문하기에 대해 관심을 표명해온 우리 『문화과학』은 이 변동을 계기로 고등교육 문제를 한 번 짚어보고자 오랜 만에 좌담을 마련하였다. 좌담참석자들은 대체로 교개위의 '개혁안'이 자본논리의 침투를 허용하고 대학의 자율화를 막는 등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진단하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담에 참석했던 김진균, 도정일, 장임원 세 분에게 감사드린다. 좌담에서 언급한 '문화연구'의 모습을 외국 실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이동연의 글을 싣는다. 영국, 미국의 사례를 찾아 차분하게 보고하고 있는 이 글에서 문화연구의 구체적 사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고 특히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피에르 부르디외 교수와 가진 인터뷰를 싣는다. 프랑스에 간 김에 어렵사리 부르디외 교수를 만나 소중한 인터뷰 기사를 마련해준 하윤금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기존의 현실분석란을 보강하는 의미에서, 문화적 실천의 개별 분야들 현황을 점검하고 이론적 '개입'을 모색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장르비평란을 신설하였다. 이번에 다룬 분야는 미술, 대중음악, 문학, 사이버문화 등이다. 김수기는 여전히 우리 미술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문주의적 예술관을 문제삼는다. 그는 "이미지를 인식의 문제로만 보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수정할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성욱의 글 역시 우리 문학계에 자리잡고 있는 두어 가지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번에 그가 거론하고 있는 것은 '(민족)문학의 위기'에 대한 최근의 국내 논의다. 신현준의 글은 국내 '얼트록'의 현황에 대한 진단이다. 한국에서는 '저주받은 음악'인 록은 이제 지배권력이 배제만을 고집하지 않음에 따라 새로운 운동문화로서 자기 위상을 정립해야 할 과제를 맞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서동진의 글은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저항에 대한 보고서다. 자유롭게만 보이는 사이버공간이 막상 대자본과 권력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외설스러움'을 지키고자 하는 사이버펑크들의 새로운 문화정치적 실천을 다루고 있다.

 

기획으로 이번에 우리 편집진에 참여하게 된 박성수의 글을 싣는다. 현재 해양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박성수는 이 글에서 "기존의 쇼트와 몽타주의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단위를 통해서 이미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들뢰즈의 영화이론을 평주하고 있다.

 

문화과학의 다음 주제는 '사이버'(cyber)이다.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떠오른 '사이버' 현상에 대해 이미 많은 관심이 촉발되어 있으나 엄밀한 검토는 아직 없었다. 기고를 비롯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