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를 발간하며

 

1994년 여름은 오래 기억에 남을 여름이 될 듯싶다. 전기협, 지하철노조 파업으로 시작하여 아직도 대단위 사업장에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본의 대립과,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또 수십년만의 가뭄과 혹서로 우리 시대 세 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잠 못이루는 열대야 속에서 요즘 우리는 계급과 민족과 환경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는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닐까 싶다.

김일성주석의 죽음으로 '북한 핵' 문제로 한때 전쟁위기론으로 증폭되던 한반도의 위기국면을 포함해 민족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었을 '정상회담'은 무산되었다. 게다가 그의 죽음은 '조문' 시비를 불러 일으켜 보수세력에게 공세 빌미마저 제공, 통일운동과 특히 오랜만에 파도를 탄 노동운동의 물결을 가로막으려는 신공안 정국을 형성케 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통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불문곡직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극우보수세력의 활약상이다. 엎친데 덮친 격이랄까, 올 여름 가뭄과 혹서는 우리 속을 더욱 뒤집히게 한다. 그러나 열대야 잠 못이루는 밤에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면 자연의 이런 현상은 우루과이라운드의 국내비준이 강행될 시점에서 위기의 벼랑으로 내몰린 농업이 우리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일 수도 있다.

현정세는 분명히 진보진영이 죽을 쑤거나 허덕이고 있다. 삼복이라면 여느 때인들 힘들지 않을까만 50년만의 혹서 속에 축조중인 시설물 위에서 벌인 고공 시위가 벌써 몇 번이며 구속과 파면과 직위해제는 또 몇 명인가. 지배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과 매체가 주도하는 이데올로기투쟁에서도 진보세력은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이번 여름이 오래 지속될 미래 속에서 '그 해 그 무덥고 길던 여름'이 되었을 때 남아있을 기억이 두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여름 우리가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면 따라서 그것은 이 기억의 내용을 바꾸기 위해서리라.  

신공안정국의 형성, 보수세력의 약진, 그것은 곧 진보진영의 패퇴와 지리멸렬을 의미함을, 곧 우리가 스스로 패배의 길로 걸어왔음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어쩌면 우리가 패배를 더 뼈저리게 체험해야 할, 그리하여 그것에 대한 인식--가상이 아니라--에 도달할 수 있을 징검다리를 놓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런 취지에서 이번 호는 다시 문화론을 말하고자 한다. 공안정국이 이데올로기적 담론적 실천의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면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현장으로서 문화의 장은 정치의 한 중심처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진보운동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면 필요한 것은 그 전략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정치와 문화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그동안 고수했던 무지를 문제로 삼지 않고서는 정치가 된 문화를 사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문화론을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꾸민 특집은 그래서 문화와 과학의 긴장된 관계를 그 주제의 하나로 삼고 있다. 창간호 이후 처음으로 가진 좌담(「새로운 문화적 실천을 위하여」)에서도 '문화적 실천'이 왜 '이론적 실천'을 대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론적 실천이 내장된 문화적 실천은 왜 실험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강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번 좌담은 그래서 방담의 성격을 가능한 한 줄이고 표적 논의를 지향한 셈이며, 좌담 참석자들을 기간에 『문화과학』이 해오던 작업에 직간접으로 참여해오던 분들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아직 참석자들 사이에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라서 군데군데 서로 다른 입장들의 편린들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대로 당연하다 하겠다.

특집에 실리는 논문들은 모두 4편이다. 이번 특집 논문들 중 심광현, 강내희, 이동연의 글들은 그동안 『문화과학』의 내부 논의의 결과물들이라고 하겠는데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창간 이후 진행한 이론작업의 중간보고서쯤 된다고 보면 된다. 심광현의 글 「지형학적 실험과 문화정치적 실천의 전망」은 좌담에서도 줄창 제기되었던 문화적 실천의 이론화와 관련한 중심 작업에 해당한다. 그의 이번 작업은 창간호에 실린 「유물론적 문화지형학 구성의 전망」의 후속 작업으로서 '혼돈의 과학' 수립을 통한 문화적 실천의 실험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의 문화논의에 기공(起工)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이 글에서 독자는 '포스트' 조류 속에서 선뜻 '포스트'에 빠지기 전에 따져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점검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강내희의 「대중문화, 주체형성, 대중정치」는 '정치경제학비판'에 대한 좀더 엄밀한 이해를 통해 정치경제학이 노동력재생산을 겨냥하는 지배이데올로기라는 점에 착목하여 대중문화가 오늘날 새로운 중요한 이데올로기국가장치로서 부상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광현, 이동연의 글과 함께 유물론적 문화론이 육체이론의 구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문화과학』의 새로운 이론적 전망의 일단을 내보인다 하겠다. 이동연의 「문학실천 전화를 위한 구성조건」은 『문화과학』에 처음으로 실리는 본격적인 문학관련 논문이다. 알튀세르의 이론에 기반한 '문학생산론'을 발전시키면서 기존에 국내에서 이론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던 리얼리즘론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고 있다. 특집의 일환으로 세계체제론자로 우리 귀에 익은 월러스틴의 글을 하나 번역해 넣었다. 월러스틴은 세계체제론자로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이지만 그의 이론체계가 문화 개념을 하나의 축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하며, 심광현의 글에서 그가 자주 인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 그는 '세계문화'는 허상이며 자유-평등한 세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적 성격을 지닌 '특수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획으로 오세철의 「변혁주체의 구성과 그 실천」을 싣는다. 우리 사회에서 보기드문 민중운동 교수활동가인 오교수는 "남한사회 변혁에 있어서 변혁주체 구성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상투쟁을 통하여 변혁주체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것을 막아내고 진정한 변혁주체로 나서게 하는 일"이라며 변혁적 지식인 운동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최근의 사상적 동요를 비판한다. 그리고 "변혁주체는 변혁적 지식인운동의 이데올로기투쟁과 함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올바르게 결합시키는 계급투쟁을 전개해야 하며, 이를 실현시키는 두 축은 노동자계급운동과 변혁적 정치운동, 즉 당건설운동"이라고 말한다.

이번 호에서는 문화현실 분석에 해당하는 글로 세 편을 싣는다. 그 하나가 고길섶의 「이름--주체, 욕망, 성, 권력」인데, 우리가 추구하던 분석의 한 모범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름을 둘러싼 갖가지 문제들을 심도있게 분석하는, 이론적으로 탄탄하면서도 재미마저 지닌 모처럼 보는 값있는 글이다. 해수로 3년째 신촌문화축제라는 것이 열리고 있다. 특히 금년에는 신촌 근방 5개 대학과 주변 문화단체들의 직접 참여로 주목을 모았는데 그 '주체적'인 몫을 따지는 일을 손동수가 맡았다. 사콜스키의 글은 맑스와 푸코를 결합한 노동과정 분석의 글이다. 한동안 국내에서 노동과정에 관해 쓴 글을 구하느라고 무단히 애를 썼지만 결국 구하지 못하고 마침 『맑스주의 재고』(Rethinking Marxism)지에서 소개할 글을 하나 찾아 번역으로 넣는다.

문화정세 글로 뽑은 것은 조경만의 「UR 국면 속의 농민, 농업, 쌀」이다. 우리 현안인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따른 쌀 수입개방, 그리고 그 여파로 맞게 된 국내 농업구조의 해체 위기를 둘러싼 문제들을 다룬 글이다. 조교수는 쌀개방이 지닌 단순히 경제적 의미를 넘어서 농민의 삶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맺고 있는 여러 관계들을 분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좌담 한 꼭지, 논문 및 분석 글들 9편 등 모두 열 꼭지를 마련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래서야 어디 제 때에 책을 낼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우리 이론생산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과학』도 좋은 글들을 개발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지만 독자 제위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청된다. 많은 성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