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를 발간하며
어느덧 18호이다. 1992년 여름호를 창간호로 냈으니 딱 7년째이다. 아직도 『문화과학』이 나오느냐는 사람도 있고, '서바이벌 게임'을 끈질기게 벌이고 있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최근의 공개적인 자리들에서, 어떤 교수들은 대학생들이 『문화과학』을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며 냉소하기도 하고 어떤 '구좌파' 교수는 '매우 독특하게' 신좌파 조류를 형성해왔다고 평하기도 했다. 애시당초부터 이미 우리가 수행해온 작업에 대해 많은 논란과 시시비비들이 있어 왔다. 이런 저런 매체들을 통해 종종 비판적인 발언들도 해주었다. 관심과 질책에 감사해하면서도 우리는 그때그때 응답을 하지 못했다. 그 발언들을 무시해서 '침묵'한 것은 아니다. '변명'하자면 적절한 기회를 만들지 못해서이다. 그리고 그보다는 단순히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어적인 태도에 그리 매력을 못 느꼈던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지연시키지 않고 본격적인 응수를 이번 호에 준비했다. 편집인인 심광현이 집필을 맡았고 편집회의의 토론을 거쳤다. 그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온 비판적 발언들의 시차성을 염두에 두면서 『문화과학』의 이론적, 담론실천적 변이의 과정에 상응하여 통시적 방법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통시적 방법은 수용이냐 방어냐의 이분법적 대응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끔 한다. 우리는 그 반론에서 내보이듯 특정이론에 머무르는 이론의 '브랜드 경쟁'이나 선형적인 일관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움직이는 사유작용의 공간화'라는 토픽적 사고에 기초하여 이론들의 접속 및 변용들에 따르는 이론적 실천의 횡단, 거기에서 주춤거리지 않고 곧바로 한국적-전지구적 정세들에 긴장하는 실천쟁점들의 도출, 현실개입적 실천을 위한 현장과의 연계, 그리고 맑스주의 전화에 있어서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전복과 탈주에 집중해온 것이 우리의 작업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정치'/'문화공학'/'문화사회', 혹은 '문화적 공공영역'을 창출해내는 '탈근대적 문화정치'라는 이미지들로 집약된다. 하지만 이러한 통시적 변이들이 폐기를 통한 불연속적 이행이 아니라, 공시적 재구성들로 다층화하는 끊임없는 지도그리기라 할 수 있다. 『문화과학』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은 이러한 전체 지도를 보지 않고 부분들, 특히 초기작업에만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오해와 곡해들이 존재한다고, 심광현은 지적한다. 우리는 또한 현재상태에 머물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문화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가따리, 네그리에게서 크게 덕을 보고 있지만 그들 이름에 접미되는 '―주의자'로서가 아니다. 그들 이론이 함축하는 수많은 잠재성들을 우리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3차원 이상의 관점에서 지난 역사들을 재독해하고 다가올 미래를 창조적으로 구성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우리는 환기한다. 우리가 서구이론에 '편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땅과 육신으로 가로지르기를 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기꺼이 '신좌파'를 표방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다층적 실천들에 대해 개입하고 비판하고 생성의 프로그램들을 창출해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우리만이 옳다'라고 독선적으로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질타들을 수용하고 창발적인 시선들과 접속하면서 다층적 실천연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심광현의 반론에 재비판들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호에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좀 낡아보인다. 주로 '첨단적' 주제들을 제시해온 『문화과학』이 '외도'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간 다루어온 주제들의 방향과 의미들 속에는 '민주주의' 문제가 함축되어 있었고, 그것을 배제하고서는 어떠한 의미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실지로 우리는 여러 경로들을 통해서 특히 '문화주권'과 '문화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쟁점화하는 데 참여해오고 있다. '민주주의' 의제는 사실 낡은 주제가 아니다. 오늘의 낡고 새로운 민주주의 위기들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는 의제이다. 90년대 들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는 새로운 거대담론이 쏟아지면서 그 지배담론들은 민주주의 성분들을 빼내버렸다. 지난 4월 지하철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에서도 드러났듯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경제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그 실행기계인 구조조정은 반민주주의화 혹은 탈민주주의화로 나아가고 있다. 현정부의 소위 '정치개혁' 의지도 그 표현일 뿐이다. 대중들 자신들이 이미 민주주의의 증발에 분노하고 있다. 위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문화적 신보수주의를 안고 있으며, 사람들의 사회-문화적 활동과 일상들을 신보수주의로 퇴행시키고 있다. 최근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왕따' 현상들도 이런 정세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다.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급격하게 파괴하고 있지만 민주주의 문제를 그것으로만 환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시적이기도 하고 미시적이기도 하며, 다양한 경로를 가지고 있는 다층적 지점들에서의 중층적인 민주주의 위기들을 오늘의 정세와 관련하여 문제삼고자 한 것이 이번 특집의 의도이다. 특집주제와 관련하여 권두언을 김진균 교수가 써주셨다. 그는 민주주의를 '차이를 인정하면서 화합해가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제안한다. 그러한 인식은 90년대 진보진영의 새로운 실천들과 담론들의 성과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실험하기에 너무나 야만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지배체제화와 그것의 한국적 '점령'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정세적으로 볼 때 현단계에서의 민주주의 위기는 야만적인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되며, 사회-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라 '희망마저 봉쇄당하는' 삶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다. 이병천/백영현은 이러한 진단 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문제를 축으로 하여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그것의 신자유주의적 정점과 성격을 해부한다. 그들은 현 글로벌 신자유주의를 '반생산적-기생적-병리적인 제로섬게임'의 진지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유럽의 '제3의 길' 노선에 대한 이중적 가능성을 분석하고, 우리가 위치한 동아시아적 지역연대의 길도 모색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 위기는 일국적 단위를 넘어선 전지구적인 문제임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해영도 민주주의 위기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돌리면서도 다른 논의로 접속해간다. 그는 최근의 '탈민주주의적 자유주의' 경향에서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민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헤게모니의 결과로 파악한다. 이런 정세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달려 있다고 보되, 그러나 왜 정권이나 조직의 지도부가 바뀌어도 진정 바뀐 것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과두제'를 문제삼으며 그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비판과 견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있어서 민주주의는 다수인민의 주체적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주권자들의 '자기입법'을 통해 끊임없이 구성되어 가는 과정으로서 파악된다. 그의 문제인식은 고길섶의 논의로 연결되고 있다. 고길섶은 아예 과거 민주화운동 주체들의 오늘의 변신을 민주주의 위기의 한 요소로 파악하면서 근대적 정체성의 한 원리인 대의민주주의와 대의체제가 갖는 '체제들-권력들-욕망들의 먹이거울'의 악순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분석한다. 그는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강도높게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서 자기조직화하는 '인민주권과 문화정치의 복합'을 주장하며, 그리고 지배자/권력자가 되려는 '변이의 정치학 I'을 '욕망-생성-탈주하는 소수자되기'와 그 '소수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인 '변이의 정치학 II'로 전환해나가는 과정적 실천으로서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페미니즘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도전과 가장 포괄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받아들여 황정미는 민주주의 문제와 페미니즘 담론의 접속을 시도하면서 젠더의 시각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다룬다. 그녀는 여성들이 부딪치는 지점이 '공/사 분리'의 벽에 있다고 보고 그 인습의 정치를 넘어서 공/사 분리의 새로운 규정과 사적 영역의 정치화 가능성이야말로 페미니즘 정치의 핵심고리임을 부각시킨다. 페미니즘 사고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대의제' 비판이다. 그녀는 그 대안적 논의로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의 변화와 선거가 아닌 다른 메커니즘을 통한 여성의 정치적 활성화를 주장한다. 오늘의 야만적 위기는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전화해가는 전쟁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기획>은 서울문화이론연구소의 영화분과 세미나에서 정리한 성과를 싣는다. 영화분과는 비평방법의 새로운 모색에서, '정신분석'적 방법에서 '분열분석'적 방법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한다. 즉 무의식의 억압장소인 언어의 표상에서 탈영토화하는 욕망의 저장소인 육체의 횡단으로 이동하자는 것이다. 대표정리는 박현선이 하였다. <논문>으로 두 글이 기고되었다. 이진경은 『문화과학』 7호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재독해한 데 이어 이번에는 레닌을 '때아닌' 때 다시 읽어내는 '모험'을 저지른다. 그는 레닌에게서 새로운 유물론과 능동성의 철학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탈근대적 정치학'의 방향과 '정치유물론'이라는 철학적 각도로 요약한다. 특히 레닌이 '소비에트'를 '비대의'적, 대중들의 자기조직으로 파악하였다는 분석이 주목된다. <특집>과 관련지어 읽어도 좋겠다. 홍성욱은 복합매체로서 사이버스페이스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사이버스페이스의 두 세력인 '기술'과 '법'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논의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의 방향을 제시한다. <정세>에서 이창근은 자본의 세계화가 징후하는 '재앙들'을 폭로하고 그에 대항하는 민중연대의 방향을 제시한다. <대담>과 <분석>이 흥미로운 읽을거리들이다. 이번 대담에는 원용진이 노동자뉴스단 대표 김명준을 만났고, 박성수가 철학자 김상환을 만났다. 김명준은 그가 대표로 있는 노동자 뉴스단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어 그 집단의 활동, 그 활동이 갖는 사회적 효과, 전망, 영역의 확장, 대중화 작업 등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데리다식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김상환은 철학을 역사적 문맥에서의 재구성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한 나라에서 어떤 사상이 출현하면, 그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은 이웃 나라"이다고 말하는데 이 발언은 '수입이론 논쟁'과 관련하여 상당히 의미심장해보인다. <분석>은 영국에 유학하고 있는 류제홍이 글을 보내왔다. 그는 "미디어에 의해 창조되었고 조종되고 끝내 희생되었다"는 다이아나를 영국의 정치현실, 미디어와 이미지전략, 스펙터클/축제/의전의 복합성의 층위들에서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끝으로 <주제서평>에서 이동연은 '식민지 주체형성'과 '근대적 주체형성'의 이중문제를 가지고 쟁점화하고 있으며, 오창은은 '밀레니엄 담론'의 과잉성을 지적하고 있다. 『문화과학』은 닫혀져 있어 보이지만 열려져 있다. 이질적인 글들을 많이 기다린다. 많은 투고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문화과학』의 작업에 관심을 갖는 대학원생들의 서울문화이론연구소의 세미나 참여를 환영한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신좌파'('신나는 좌파')가 되지 않을까? 1999년 5월 고길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