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를 펴내며
인류의 미래를 없애려는 어둠 혹은 망령이 세계를 뒤덮고 있다. 수년 전 세계화 구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더니, 최근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신탁통치를 받게 됨에 따라 이 망령은 우리사회에도 무서운 맹위를 떨친다. 시장에 대한 탈규제와 공공부문 민영화, 기업의 구조조정, 노동의 유연화와 그에 따른 정리해고제 및 파견근무제의 법제화 등이 그 여파다. 망령의 지배로 우리사회는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졌다. 수백만명이 실직된 채 거리로 내몰리고 다수가 걸식으로 연명해야 하고 수많은 가정이 파탄을 겪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긴축재정, 구조조정, 고통분담 등이 필요하다는 '구국의 구호'들은 난무하나 오늘 우리 손에서 벗어나는 양식과 권리와 기회가 쉬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 6년 전 『문화과학』을 창간할 때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맑스주의 위기'를 테제로 삼아 진보이론의 혁신을 제창한 바 있다. 당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진보이론의 분열과 해체와 새로운 진전 가능성이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더 큰 문제가 자본주의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한다면 여기에는 자본축적의 위기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위기 극복을 위해 자본이 취한 조치들이 오늘 망령의 모습을 띤다는 점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짓밟고 있는 이 망령, 이 인류의 적에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붙인다.
신자유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문화적 실천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코자 한다. 진보이론의 혁신을 위해 우리가 애초에 내건 길은 '과학적 문화론'의 구성이었다. 『문화과학』이 생산조건의 재생산 문제에, 이데올로기론에, 주체형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 때문이다. '문화연구'를 우리가 추구할 새로운 학문하기의 한 전범으로 삼았던 것도 그런 입장의 결과다. 문화연구의 필요성은 지난 10여년간의 국내 정세 변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990년대는 누가 뭐래도 대중문화, 소비문화의 성장기다. 당연히 많은 연구자들이 문화의 성장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문화담론의 만개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문화에 관심이 커진 것까지는 좋다고 해도 문화를 소비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증대했을 뿐 문화의 생산과정에까지 관심이 미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문화적 실천의 현단계 전략으로 '문화공학'이라는 기획을 제출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시정하기 위함이다. 과학적 문화론 구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가 주목한 것은 언어, 욕망, 육체, 공간, 과학기술 등과 같은 문제들이었다. 이 문제들은 문화적 과정에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받지 못한 이론적 맹점들이었다. 우리가 이들 문제들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들이 근대적 주체의 이데올로기, 무의식, 습속을 형성하는 조건 혹은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이해 없이 그리고 이들을 문제로 설정하는 법 없이 주체화양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 새로운 문제들의 발굴을 통해 한편으로는 문화적 실천에 대한 이론적 개입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생산의 전화를 위한 지식생산양식의 변혁을 위한 학문전략을 구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늘 '비판 모델'의 한계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 말은 비판과 분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분석이 미래학적 전망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제안, 기획, 대안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였다. 우리가 찾은 방식은 문화공학이라고 하는 '비판-생성 모델'이다. 문화공학으로 신자유주의에 맞서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찾은 한 대안이다.
'문화공학과 문화정치'라는 주제를 내건 이번호의 특집은 그런 점에서 『문화과학』의 새로운 출사표인 셈이다. '문화공학' 기획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문화적 실천의 실질화요, 초기부터 추구한 문화연구의 내실화다. 어쩌면 '문화공학'이라는 표현이 '문화과학'처럼 껄끄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문화과학'을 표방한 것이 문화론의 과학화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 말고도 서로 분리되어 소통이 없는 문화와 과학 두 영역을 대면시킴으로써 양자간에 생산적인 개입 효과가 일어나기를 바랐던 것이었듯이 '문화공학' 전략 또한 문화의 단순한 공학화를 꾀하기 위함은 아니다. '문화공학'은 문화를 대상으로 삼는 공학이 아니라 문화와 공학의 갈등적 혹은 모순적 절합을 꾀한다. 문화공학으로써 우리는 문화과정의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하고 문화적 실천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그리고 문화운동의 개입적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여기에는 생산된 문화를 비판하고 분석하는 소비적 행위에 머무는 문화담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비판적 분석보다는 비판적 생성을, 이미지의 소비보다는 그 생산메커니즘의 분석과 생산 공정 개입의 방법 개발을, 생산공정의 전화를 목표로 삼자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혹자는 도구주의적 태도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론의 위치를 구체적인 생산 과정에 자리잡게 하는 일이야말로 실질적인 문화 역량을, 문제발굴과 해결을 위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공학'을 문화적 실천의 방법론으로 채택하는 것은 문화를 위축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문화의 실제 작동에 주목하고자 함이다. 문화의 생산메커니즘에 개입하고 문화적 실천이 생산성을 높이되 이 효과가 자본주의적 공리계로 수렴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문화공학은 따라서 도구주의를 배격하며, 오히려 문화정치의 활성화를 지향한다. 자본주의적 공리계에 구멍을 뚫어 새로운 세계를 열자는 것, 그것이 신자유주의에 맞선 우리의 전략이다.
『문화과학』은 이제 그동안의 역량을 결집하여 계간으로 발행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유물론적 문화론의 기틀은 계속 유지하면서 문화공학적 역량을 강화하여 문화연구를 내실화하려는 바램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