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를 발간하며
국민 다수를 분노케 한 노동법, 안기부법 통과로 위기에 몰린 문민정부가 연이은 '한보' 태풍으로 심연으로 곤두박질하는 듯한 시점이다. 엎친데 덮친 격일까, 정치위기는 이제 그 거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총체적 경제위기까지 동반한다는 느낌이다. '개혁'의 잔치상이 엎어지고 나니 외채와 실업의 '황사' 현상이 시계를 뒤덮는 것이다. '정치 9단들'도 별 수 없는 듯 여야는 물론 노동계와 재계를 망라한 거국적 기구로 '경제대책협의회'를 구성한단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땜질'로 오늘의 경제위기를 대처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개발, 기술투자, 경영혁신을 외면하고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성장정책과 민주화를 '떡값'으로 팔아먹는 데에만 연연했던 정치적 관행들에 대한 세계경제의 예고된 보복이 나타나고 있다. 90년대초부터 서구자본주의가 10%를 넘는 실업률과 함께 대대적인 이행기로 접어든 것을 보면서도 강건너 불구경한 결과이기도 하다. 발본적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을 경우 '다자간투자협정'(MAI)과 블루라운드의 파도까지 맞게 될 21세기의 한국은 세계자본의 거대한 파도에 밀려다니는 하나의 난파선이 될지도 모른다. 21세기가 20세기의 역사적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보장은 없다. 보장 없는 세계사적 이행의 시대에 우리 현실은 취약하기 짝이 없고, 이 현실과 그 이행 조건에 대한 지식과 정보 또한 빈약하다. 현실인식의 전환을 위한 노력마저 외면하는 형편이다. 냉전식 사고와 단기적 이익만을 내다보는 경제주의, 과거에 대한 빈곤한 지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의 결여는 여전하다. 문화적 역량의 전반적 부재가 지배하는 형세에서 소비지상주의가 새로운 문화로 둔갑하는 것은 왜곡의 한 징후일 뿐이다. 궁핍과 천박이 뒤섞인 이런 척박한 풍토를 혁명함 없이 격동의 '글로벌' 시대에 민주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까? 역사적 정체성도, 기술도, 창의력도, 실험정신도 없는 국내자본이 첨단기술로 무장한 서구자본과 문화적 전통을 유지해온 개도국의 자본에 맞설 수 있을까?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지식 없이 현실 대처가 가능할까? 학문의 성장 없이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할까? '세계화 시대의 국제경쟁력 강화'나 '산업화에는 뒤졌으나 정보화에는 앞서자'는 따위의 구호가 해결책일 수는 없다. 엄밀하고 복잡한 방식의 점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이론적 반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도처에 깔려 있다. 우리에게는 현실을 분석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지식생산의 과정 자체가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백년대계를 다룬다는 교육부문의 저급한 수준을 타개하기 위해 '교육개혁'이 진행중이라 하나, 정작 교육의 근거가 되는 학문의 개혁은 외면하는 것이 그 중요한 지표이다. 드러나는 것은 교육을 위한 학문 전략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기업의 단기 수요에 신속히 끼워맞추려는 발빠른 움직임이다. 개혁이 개악이 되지 않을 보장이 여기서는 없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생산의 자본 예속화를 비판한다고 과거의 관행에 안주할 수도 없다. 점점 더 멀티미디어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모노미디어 시대의 학문과 분과체제로 맞선다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일 것이다. 우리가 이번 특집의 주제를 '오늘의 학문전략과 지식생산'으로 잡은 것은 이런 착잡한 상황의 맥을 가다듬어 보기 위함이다. 총론격으로 싣는 강내희의 글은 '지식의 기술화' 과정의 메커니즘과 과거의 분과학문체제를 역사적으로 재고하면서 통합학문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학문'은 헤겔식 총체성으로의 복귀도, 최근 유행하는 '학제적' 연구도 아니다. 이 글은 새로운 형태의 통합학문이 '부분적 지식'들간의 복잡한 네트워크임을 강조하며 그것에 '절합학문'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생산의 형태가 '절합적'이라고 해도 과거와 같이 서구의 지식생산을 매번 뒤늦게 좇아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21세기의 전망 역시 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서구 지성이 자신의 한계를 반성하고 동양의 정신적 자원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상황에서 이제 전통과 현대의 결합은 당위의 차원을 넘어 현실적으로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영상정보 등의 대두로 급변하는 '세계화' 과정에서 기존의 분과체제의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을 필요와 함께 우리 민족공동체의 자연사적 기초를 재규명하고 자본주의화에 대한 대안 구축의 전략적 기초로서 '한국학 본거지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김진균의 글은 이런 점에서 오래 곱씹어야 할 화두를 제기한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초하의 글은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을 두루 섭렵하며 학문과 정치, 현실 분석을 망라했던 18, 19세기의 학문풍토에서도 통합적 성격이 누구보다 강했던 다산 정약용의 사례를 살피면서 이를 전략적 참조점으로 삼고 있다. 지식생산의 새로운 전략 모색을 위해서는 복잡다단한 현대 서구의 지식생산과정도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와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현대자본주의와 분과적 지식생산의 관계를 비판하고 현실 변혁에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이론적 실천의 모색을 모범적으로 보여온 영국 '문화연구'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원용진의 글은 이런 맥락에서 준비되었다. 한편 자본에 의한 '시공간 압축'이 가속화되는 와중에서 현실적으로는 비중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지식생산은 거의 공백에 가까운 시각, 이미지, 공간에 대해 문화연구 입장에서의 이론적 개입이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는 심광현의 글은 이런 문제들을 다루던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부분적 지식'들간의 새로운 '절합'을 위한 시도이다.
이번 호부터는 젊은 필자들을 통해 신선한 공기를 확충하고자 '기획' 란을 강화하기로 했다. 최근 들뢰즈와 푸코 등을 통해 새롭게 부상되고 있는 니체 사상의 핵심을 혁명적 실천의 '생성적 힘'이라는 줄기로 파악한 고병권의 글은 니체가 흔히 오인되는 것과 달리 파시즘 또는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맑스나 네그리와 인접해 있음을 신선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틀의 왜곡이 한 이론이 지닌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실천의 힘을 왜곡시켜왔듯이 낡은 윤리의 도식적 패러다임은 육체와 감성이 지닌 생성적 활력을 억압하기 마련이다. '포르노티즘과 에로그라피'라는 뒤틀린 제목으로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억압형식을 '튀는 언어'로 비판하고 있는 이재현의 글은 낡은 윤리로 오늘날의 성적 실천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있다. 급변하는 현실의 복잡성에 비해 우리의 정치적 의식과 지식생산, 윤리의 잣대는 지리멸렬한 상태이며 현실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형세다. 이런 빠른 변화 중에서도 특히 일상의 표피를 바꾸어가는 속도는 가공스러울 정도인데, 이득재의 '패션론'은 우리의 신체와 옷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틀로 십대들의 패션취향이 현란해져가는 것과 정비례하여 늘어가는 정신적 취약성의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한편 멀티미디어 영상과 사이버스페이스의 확산으로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는 문학영역에서 '사이버 문학'이라는 대안을 추구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여국현의 글은 진정 필요한 것은 전통적 문학패러다임을 고수한 채 여기에 새로운 미디어체제를 덧붙이는 식의 의사-사이버 문학이 아니라 '전자적 텍스트 짜기'라는 보다 포괄적인 패러다임으로 전통적인 글쓰기를 전환시키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우리의 일상문화현실을 보면 극성을 떠는 대중매체문화의 현실 이면에 청소년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하위문화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폭주족' 같은 청소년 하위문화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계급재생산의 실제적인 고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런던 빈민가의 재개발과정과 지역 청소년들의 다양한 상징체계를 생산하는 하위문화와 '일탈행위'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한 필 코헨의 글(번역)은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부재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어떤 행위양식을 택하게 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적극적인 문화실천의 전략과 조직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정한 '정책'란은 그동안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이번 호에서는 상황을 개선하여 아직도 80년대의 연속선상에서 크게 변하지 못해 점점 역량을 소실해가고 있는 재야와 대학의 문화운동 양자의 발본적인 전환을 위한 제언 형식의 두 글을 싣는다. 서울문화이론연구소의 토론 내용을 정리한 강내희의 글은 지식의 기술화/기획화가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문화현실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해 창조적 기획과 공동작업을 강조하는 '문화공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저간의 낡은 예술장르 중심으로 편재되었던 문화운동의 재편을 제안하고 있다. 이동연의 글 역시 이와 유사하게 새로운 상황에서 대학문화운동의 인식론적 전환이 시급함을 강조한다. 물론 이런 주장들이 복잡한 문화현실에 대한 총괄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부분적 실천들의 새로운 '절합'을 촉진시킬 수는 있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11호도 원고 준비가 늦어져 계획보다 발간이 한달이나 늦어졌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 중에도 편집자문위원으로 한국철학을 하시는 유초하씨가, 편집위원으로는 원용진, 고갑희, 손자희씨가 새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동안 편집위원이던 심광현이 새로 편집인을 맡게 되었다. 새로운 편집위원들의 활발한 토론으로 <문화과학>의 시야와 폭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의 격려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