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를 발간하며

 

지난 여름에 있었던 '한총련' 학생들의 연세대 점거농성 사태와 뒤이은 무장간첩 침투 사건에 대한 문민정부의 대응은 신속하면서도 교묘하게 진행되었다. 헬기까지 동원해서 농성학생들을 초기에 강경 진압하고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공비소탕작전을 벌인 것은 공권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긴급사태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던 과거의 지배전술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 대중들을 상대로 한 한편의 드라마 연출이라는 형태, 반공교육의 절실함에 대한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담론정치 구성 재료의 생산이라는 형태가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대중매체로 여과된 볼거리로 바뀐다, 마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체화한 시민주체들에게 정치적 사태들도 구경거리로 즐길 여유라도 있는 듯이. 하지만 우리사회가 누릴 여유는 별로 많지 않다. 경찰진압과 군사작전이 볼거리로 전환되는 사이에 첨단 매체라고 하는 전자통신이 소탕 대상이 된 것이 한 증거이다. 한총련이 운영하는 통신 사이트들이 수사 대상이 되고, 공비와 관련된 '자유로운' 발언들이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문화과학』이 이번호에서 '사이버문화', '사이버정치'를 주제로 삼은 것은 그래서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상찬이 억압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가장 자유롭다는 공간의 비자유 문제를 다루는 일이 우리 현실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기간행물로서는 파격적으로 지면 전체를 '사이버'라는 단일주제로 깔면서 우리는 사이버공간의 내부 모순을 살펴보고자 했다. 사이버공간을 이상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장소로, 그 정반대로 억압적 정치의 연장으로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데서 벗어나 그 공간의 복잡성을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호는 지난 8, 9호의 특집주제인 '과학, 기술, 문화'와 '뉴미디어 문화환경'과 연계된 것으로,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주요 경향들과 연결되어 발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 '테크노문화'에 대한 관찰 및 분석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이버 문화환경은 더 이상 미래의 환타지도, 공허한 상상력의 산물도 아니다. 그것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모습, 인간문명의 구체적 문제의 모습이다. 현실공간과 가상공간, 실명주체와 가상주체, 정보 독점권력과 민주권력의 분리불가능한 상호작용이 그 속에서 일어난다.  

10호의 글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접근방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선 홍성태의 「정보사회와 문화의 정치경제학」은 정보화 양식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현란한' 문화양식과 '칙칙한' 정치경제학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한 글이다. 기술이 문화에 끼진 영향을 외삽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현대문화 내부의 핵심으로 보기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기술문화를 정치경제학 비판의 문제틀로 바라볼 때 검토해야 할 정보화양식의 통합적인 수행성과 복합미디어의 독점현상, 문화적 신자유주의 경향들을 차분히 다루고 있다. 백욱인의 「디지털혁명과 일상생활」은 정보혁명이 개인들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들을 역시 정체경제학 비판의 관점에서 기술한다. 그는 디지털혁명이 개인의 일상에 편리함을 주는 것이면서도 그 일상을 통제하는 새로운 '사회적 테일러리즘'을 낳고 있는 데 주목하면서 일상을 통제하는 정보사회의 새로운 전체주의 극복은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혁명에서 얻어짐을 강조한다. 위 두 글이 사회학의 관점에서 사이버문화의 정치학을 다루었다면 강내희의 「사이버 '문형'과 주체형성--사이버정치의 조건들」은 '하이퍼미디어 문형학'이란 신선한 문제틀 속에서 사이버환경을 해석한다. 새로운 문학이론의 모색이기도 한 이 글에서 그는 지난호의 「디지털시대의 문학하기」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문형학'의 기본상을 그리면서 사이버문형들이 이산적 주체들의 '꼴값'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 정치적 함의들은 어떤 것인지를 따지고 있다. 사이버 문화환경에서 가장 급격하게 수용되고 있는 통신기술 변화의 현황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지인서의 글은 다양한 통신기술 사용 양상과 그 사용에서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개인통신에 관한 자료들은 분산되어 그 함의를 파악하거나 종합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데 그 방면에 관한 총체적 정보를 한 코에 꿰어 보여주고 있다.

사이버문화의 극단적 귀결은 아마도 인간과 구별이 안되는 고도의 인공지능체를 생산하는 일일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행위론의 관점에서 기계의 인공지능과 인간의 인지기능의 상관성을 조명해보는 홍성기의 글은 기술문화에 대한 보기드문 철학적 접근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기능과 마음의 상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인지기능의 지각적 비교과정을 반드시 포함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고 있다. 번역으로 실은 사이몬 페니의 「계몽기획의 완성으로서의 가상현실」은 사이버문화의 인식론적 접근을 다룬 글로서 홍성기의 글과 묶어서 읽으면 제값을 다하지 않을까 싶다. 역시 번역글인 리처드 바브룩과 앤디 카메룬의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사이버문화가 세계의 문화로 전개된 배경에는 60년대 히피의 자유분방한 정신과 여피의 기업가적인 열망이 한데 뒤엉킨 역설적 상황이 작용한다는 점을 흥미롭게 지적하고 있다.

기획란과 장르비평란도 역시 '사이버' 문제로 채웠다. 임현경의 글은 사이버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용어들을 그 용어들의 출현 배경과 사회문화적 함의에 중점을 두어 설명하고 있어 이 분야에 낯선 독자들이 먼저 읽어볼 만하다. 서동진의 「디지털부족들--접경의 연속체」는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주체들의 탈정체화 전략을 동성애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현실공간에서는 침묵하고 여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발화들을 담을 수 있는 사이버공간의 담론적 실천에 주목하고 있다. 테크노음악에 대한 편견을 교정시키고, 테크놀러지 음악 장르의 지형을 폭넓게 그려보고 있는 이동연의 글은 테크노·사이버펑크 음악이 인간 감성의 오감적 실천을 가능케 하는 한 사례임을 주장한다. 유충현의 글은 사이버펑크 문화가 SF영화에서 재현되는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데, 그는 이 글에서 가상현실을 지배할 새로운 사이버 권력체의 양상과 그것에 저항하는 영화주체들의 다양한 정체성 형태를 짚어보고 있다. 최근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컴퓨터 채팅문화를 분석한 고길섶의 「채팅, 자유의 새로운 영토?」는 채팅상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만남과 소통방식은 개인의 일상과 육체를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현대성의 코드화에 대항하는 정신분열적 반역이자 새로운 영토 개척의 실천임을 역설한다.       

『문화과학』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항해 끝에 10호까지 발간하게 되었다. 햇수로 5년이 되었건만 겨우 10호밖에 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편집진의 게으름과 역량부족 탓이겠지만, 다른 한편 열악한 현실 조건에서 좀더 좋은 기획과 좋은 글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한 내부의 산고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음을 알리고 싶다. 『문화과학』은 그동안 한국 문화운동의 전화를 위한 인식론적 전환과 이론적 실천, 그리고 새로운 문화환경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해왔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작업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환경과 문화실천에 좀더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기획들을 꾸리도록 노력하겠다. 그간의 느린 열 걸음은 앞으로 더 재바르고 성숙한 걸음들을 위한 밑천이 되리라고 자위해 본다.

오랫동안 문화과학 세미나에 참가하면서 때로는 글품과 때로는 발품으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고길섶이 새로운 편집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앞으로 문화과학의 제2의 도약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적극 영입할 계획이다. 『문화과학』이 더욱 쇄신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관심과 질타를 바란다.